상황이 어려워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땅 바닥에 머리를 파묻습니까? 포기합니까? 하나님과 결별합니까? 스위스의 쥐르그 즈빈덴 지역사도께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신앙을 붙잡는데 필요한 권면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항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연결편 비행기를 타야해서 게이트로 질주했습니다. 게이트에 도착하자마자 비행편이 기술 문제로 결항되었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내 마음에 많은 생각이 흘렀습니다. 다음에는 다른 항공사에서 예약을 해야겠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거지? 이러한 생각들이 스친 것입니다. 결국 진정하게 되었고, 단골 고객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더 좋은 편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음, 좋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야. 다른 항공편이었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 사실 내가 이 항공사를 좋아하긴 하잖아.”
물론 이 글의 논지는 아니나, 나의 게으름이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자세를 논하기 전에, 이 사례는 매일의 삶에서 벌어지는 아주 작은 이야기일 뿐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신앙 혹은 회중 생활에서 우리는 이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실수가 벌어지고,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들을 허락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인식하기도 전부터 하나님과의 결별을 할 준비가 되어 갑니다.
시편 73편 23-2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주님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나를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이는 성숙한 신뢰를 아주 경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신뢰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나는 상호관계의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사안을 정확하게 바라본다면,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은 우리의 생각이 애초에 잘못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예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 예수님을 떠난 제자들입니다. (참조 요한복음 6장 60절) 그 제자들은 예수님을 오해했고, 적대감을 가졌습니다.
나는 아주 어려운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병, 경제 문제)에 빠진 자매들, 형제들과 자주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에도 확신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바로 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나는 신앙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 충성으로 남아있겠습니다!” 아주 최근, 암 말기로 고통 받던 젊은 형제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안아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거룩한 사랑, 견고한 신앙, 깊은 명철로 점철된 우리의 경험에 기반을 두며, 그러할 때 어떠한 것도 파멸되지 않습니다.
신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써 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원문 참조 : https://nac.today/en/158033/553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