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소식
케이프타운 (남아공) 서머셋의 회중이 2014년 다른 장소로 이사했습니다. “새” 교회 건물은 기존의 네덜란드 개혁 교회에서 사용하던 건물을 교회에서 인수하고 보수한 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의 역사는 200여 년이 넘습니다.
1817년 몇몇 농부들이 모여 주지사인 찰스 서머셋 경을 찾아가 헬더버그의 산간 지역에 교회 건물을 건축하고 마을을 짓도록 허가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의 요청서는 허가를 받았고 1819년 착공에 들어갔습니다. 1820년 2월 13일 교회 건물이 공식적으로 헌당되었습니다.
1862년 건물의 구조가 크게 개편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다시 문을 열기 전 북쪽 박공 면이 예기치 못한 추운 바람을 맞아 붕괴했습니다. 다행히 회중에게 교회 문을 다시 열기 전 붕괴된 곳을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1899년과 1902년 사이에 벌어진 제2차 보어전쟁 당시, 온즈 얀 (우리의 얀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저널리스트이가 정치가였던 얀 헨드릭스 호프메이어가 국가 간 화합을 위해 싸우고 있었습니다. 1909년 서거 당시 서머셋에 위치한 네덜란드 개혁 교회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파손으로부터 보호 받은 문화유산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사용된 교회 건물은 회중에게는 너무 작은 공간이 되어 버렸고, 구성원들은 새 건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전 건물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황폐해졌습니다. 1960년대가 시작되자 건물을 재건했고, 다시 한 번 더 네덜란드 개혁 사역 교회가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성원들은 1990년대 까지 건물을 잘 사용하였고, 그 이후 다시 건물이 황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동안 교회 건물에 학교가 들어섰고, 그 이후 또 다시 몇 년간 텅 빈 공간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건물 소유자들은 이전에 교회로 쓰인 건물을 사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로 결정합니다. 이 때 새 사도 교회에서 당국에 구매 요청서를 제출했고, 담당자들은 20년 간 대여 해주는데 동의했습니다.
교회 건물에 있던 공동묘지는 훌륭한 건축을 이유로 1963년 국가 문화유산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지역 문화유산으로 다시 재정되었습니다. 남아공 교회의 건축 담당처는 이에 매우 기뻐했는데, 보수 작업으로 역사적인 건물의 훼손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대하고, 성장하는 회중
회중은 현재 훗날 회중의 렉터가 된 존 디어데릭의 사역을 통해 1925년 세워진 서머셋의 교회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회중의 첫 번째 교회 건물은 1931년 헌당되었으나, 이는 급격하게 너무 작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보증 기간의 차원에서 여러 공간이 예배를 위해 대여되었지만, 회중의 수가 계속해서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예배를 기념하기 위해 독자적인 회중의 교회 건물을 소망했던 것입니다.
2012년 노엘 바르네스 지역사도께서는 사도 직분 및 주교 직분들과 함께 서머셋 서부의 역사적 장소들을 관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어있는 네덜란드 개혁 교회 건물을 보았습니다. 얀 헨드릭스 호프메이어의 무덤 앞에서 모두 함께 찬송을 부르기로 하였고, 그러던 중 온즈 얀이 103년 전에 이곳에 안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보수는 12개월이 걸렸습니다. 여러 부분이 교체되었고, 보호가 필요한 문화유산 건물의 골격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의 수리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보안 체계를 통해 침입자로부터 교회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2014년 1월 19일, 노엘 지역사도께서는 당시 케이프 타운 지역의 사도 직분 및 주교 직분과 함께 서머셋 회중을 위한 헌당 예배를 집전하시며 회중의 “새” 교회 건물을 기념하셨습니다.
500여 명에 이르는 구성원으로 이뤄진 회중은 섬김의 독자적 장소로 쓰일 실제 교회 건물을 다시 가지게 된 것에 매우 기뻐했습니다. 2015년 그곳에 있는 새 사도 교인들은 진-룩 슈나이더 수석사도의 회중 방문이라는 특별한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영어원문 참조 : https://nac.today/en/158039/85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