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어 있는 무덤을 기념했습니다. 왜냐하면 텅 빈 공간이 교리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분노의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에게 계시지 않고, 영원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생명을 줍니다. 부활절에 관한 다소 다른 접근입니다.
“하나님 사랑.”(새 사도 교회 찬송가 390장 ) 주일학교 성가대가 음성을 내기 위해 성대를 울립니다. 주일학생들이 새 사도 교회의 히트곡인 “하나님 사랑, 우릴 위해”라는 곡을 크나큰 기쁨으로 듣는 일은 늘 감동적이고,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 곡을 들으며, 구약 한 장 한 장을 뒤져 나오는 장면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은 결국 사랑이 없고, 오로지 화만 내고 처벌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분노에 사로 잡혀 기분이 상한 이들도 있습니다. “저기요, 혹시 세계사의 중점 사건을 놓친 것은 아니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세워지다.
서양 세계에서 가장 교화한 무신론자들이 살고 있는 해는 언제입니까? 2018년 입니까? 과학자들이 태초의 시작 날이라고 정한 날은 언제입니까? 똑같은 영점시간입니까? 분명 사랑의 하나님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것은 견고한 기반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힌 한 남성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역사의 굴레 속에서 그 이름은 각기 다르게 기록되었지만, 그는 예수이십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복음 15:13) 우리의 찬송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주를 찬양! 사랑의 주를!”
죽음을 이긴 생명
생명은 죽음으로부터 되살아 납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주변의 “금지 구역”에서는 식물과 야생동물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고 더 상황이 좋습니다. 생명은 죽음을 이깁니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믿을 수 없거나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부활의 신념을 확증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자는 누구나 요점을 놓쳤습니다. 신약은 사실관계를 찾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복음서들은 부검 결과나 사인을 밝히지 않습니다. 증인들의 설명 역시 혼란스럽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땅과 저 세상에서. 그 때와 지금에 있어서. 2018년 부활절을 보내는 당신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 존재합니다.
생명을 믿지 않는 이들은 죽음을 자신의 신으로 모십니다. 이것은 죽음이 모든 권능을 쥐고, 어떠한 것도, 그 누구도 그것을 피해갈 수 없게 합니다. 그것은 죽음을 독단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죽음이 원하는 때와 방법을 정하게 하고, 완전한 어둠을 가지며, 영원한 종말을 고합니다. 예 그것은 사실이며, 그곳에는 분노하시는 하나님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은 분명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절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불멸하다. 부활을 믿지 못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지난 2000년 동안 살아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본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는 수 천 수 만 명의 마음 안에 계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살아 있습니다.
또한, 아는 것을 넘어, 믿기 위해 충분한 용기를 발휘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찾을 것입니다. 그들은 선생이신 예수님뿐만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마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훨씬 더 위대한 메시지를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파괴할 수 없다. 당신이 누구이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한다면, 이 사랑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영어원문 참조 : http://nac.today/en/158033/564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