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는 전통이 있습니다. 새 사도 교회의 직무 구조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목자와 복음자는 성경에 따라 필수일까요? 다음의 내용은 빈도수가 높은 질문에 대한 몇 가지 답변입니다.
모든 것은 에베소서 4장 11절을 중심으로 둡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보편적 사도 교회에서 “4중 집무 교리”를 수립한 것은 바로 이 구절을 기반으로 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 내부 구조는 사도, 예언자, 복음자, 그리고 교사의 개념에 포함된 목사를 필요로 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새 사도 교회가 초기에 따랐던 것이기도 합니다.
본 개념 역시도 선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종교개혁가인 요한 칼뱅(번역자주: 한국의 장로교회가 속한 장로교단이 신봉하는 칼뱅 신학사상의 창시자임.)은 이미 300여 년 전에 4중 직무 교리를 수립했습니다. 1541년 칼뱅의 교회 조례에서는 각 회중에 목사, 교사, 장로, 집사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 성경에서 구성하는 교역자로 이해되는 일반적인 직함을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내일을 위한 어제의 예
사도 교회 양측(보편적 사도 교회와 새 사도 교회 – 역자주)은 처음에 비교의 관점에서 4중 직무의 견해에 대한 성경 기반을 찾았습니다. 예를 들어, 에덴동산의 네 강, 예배 장소의 희생 제물 성단을 위한 네 나팔, 요한계시록 4장의 네 생물, 그 외 여러 유사 예시가 있습니다.
보편적 사도 교회 해석에서는 이를 “전조”로 설명합니다. 오늘 날의 학자들은 이를 “유형적 해석”으로 언급하며, 이는 과거의 이미지가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원칙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시기에 있었던 전통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초기 교회에는 어떤 교역자가 있었는가와 같은 순수한 사실적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써는 완전히 부적합하다고 여겨집니다.
안수 없이, 요건 없이
신약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집사와 장로/감독, 다른 한 편으로는 예언자, 목사, 복음전도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사도행전과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는 최초의 집사 직분 안수, 훗날 감독 직분 안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설명합니다. 예언자, 복음전도자, 혹은 목사에 상응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 목회 지침이 담긴 서신(디모데 전서 및 후서, 디도서)에서는 집사 및 감독 직분을 수행할 사람의 분명한 요건에 대해 설명합니다만 예언자, 복음전도자 혹은 목사와 관련된 설명은 없습니다.
• 이 두 그룹의 명칭 모두 어느 구절에서도 함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공통점은 사도 직분에 대한 언급뿐입니다.
신약 전체 맥락의 관점에서 보면, 에베소서 4장 11절은 예언자, 복음전도자, 목사를 교회의 직무 구조에 대한 의무적 요소로 간주하기 위한 적합한 근거로 볼 수 없습니다.
의무와 선물의 사이에서
그렇다면 이 구절에서 예언자, 복음전도자, 목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에 대한 답변은 아주 작은 한 단어 “주다(gave)”(그리스어 didómi), 다른 단어로는 “수여 받은”의 직역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7절에서는 이러한 방향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선물의 분량을 따라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점은 여러 서로 다른 섬김과 의무(diakonía) 그리고 다양한 은혜(chárisma)의 선물에 대해 언급한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매우 분명해집니다. 이 구절에서는 예언자 및 교사와 더불어, “기적을 행하는,” “돕는,” 그리고 “관리”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1913년 출간된 새 사도 교회의 역사책인 “Old and New Ways”에서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단 4개 혹은 5개의 직분”이 아니라 “많이” 있어야 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직분, 또 한 편으로는 영적인 선물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최초의 일곱 집사 중 한 명인 빌립이 복음전도자로 기술되어 있는 이유 역시도 설명해줍니다. 손을 얹음을 통하여 마음의 소리를 듣고, 권능과 사랑의 영을 받았던 디모데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을 교사라고 기술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도 설명이 됩니다.
모든 영적인 선물이 직분에 상응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섬김과 임무가 직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본 연재물의 다음 편에서 다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