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2월 국제교회 소식
너무 지나쳤어! 예수님께서 어떻게 부정한 세금 징수원과 사교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바리새인들은 매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늘은 세계 관세의 날이었습니다. 이 날을 맞아, 우리는 변하였거나 그리고 죄에서 개심하였거나 심지어는 예수님을 따르기까지 한 세 명의 관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세계 관세의 날은 1953년부터 지켜지고 있습니다. 세계 관세 기구(WCO)가 제정한 이 날은 국가 안보와 국경을 넘는 물품의 흐름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관세 공무원의 역할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세관 공무원이 항상 그렇게 높이 존경받아 온 것은 아닙니다. 성서 시대에는 사실상 세관 관리였던 세리(세금징수원)는 죄인과 동의어였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 이후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와 달리 오늘날의 국가는 자체 관세와 세금을 징수합니다. 세관 공무원은 국가의 직원이며 국가의 통제를 받습니다.
성서 시대에 신약에서는 국가가 세금 징수 책임을 제3자에게 위탁했습니다. 로마인들, 해방된 노예 또는 해당 지방의 구역 사람들은 합의된 연간 고정 금액에 대해 입찰을 하고 관세 수입을 임대할 수 있습니다. 연간 수입이 합의된 금액보다 많으면 세금 징수원(세리)이 잉여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입이 더 적다면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차액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국가에는 안전한 수입원이었지만 세금 징수원에게는 위험했습니다. 그들은 종종 시스템을 남용하고 개인적인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취함으로써 위험을 최소화하려했습니다.
나무에 올라간 사람.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키가 작았기 때문에 그토록 많이 들어왔던 그 남자의 모습을 군중 속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여리고로 가시는 길을 따라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에 있는 세리를 보시고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묶어야 하겠다”고 부르셨습니다(눅 19:5).
삭개오는 세리장(세금징수원장)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지역 사람들을 고용하여 그를 위해 세금이나 통행료를 징수했습니다. 그는 매우 부자였습니다. 그의 많은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동족을 속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 때문에 그를 경멸했습니다.
구경꾼들은 예수님께서 그곳에 서 있던 제사장들 중 한명이 아닌 삭개오를 찾아서 삭개오를 방문하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견해로는 제사장들이 삭개오보다 훨씬 더 예수님의 방문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세리는 이렇게 서원했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눅 19:8). 관대한 약속으로서, 이것이 횡령에 대한 모세 율법 아래서 가장 높은 형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사람
예수님은 세리가 특별한 역할을 하는 비유를 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독실한 유대인들의 눈에는 세리들이 종교적인 반역을 저지르는 것으로 보였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기부금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비유 중 하나는 성전에 있는 바리새인과 세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눅 18:9-14). 바리새인은 자신이 세금 징수원과 같지 않은 것에 대해 거만하게 하나님께 감사했지만, 세리는 겸손하게 한쪽 옆에 서서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누가복음 18:13).
예수님은 자신의 비유를 해석해 주시면서 세리가 겸손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의롭게 성전을 떠났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를 유대 바리새인 위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
예수님은 세리를 사도로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후에 마태라고 하는 레위는 세관에 앉아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며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9:9; 마가복음 2:14; 누가복음 5:28). 그의 이야기는 세 개의 복음서에 나와 있으며 세 복음서 모두 동일합니다.“그래서 그는 일어나서 그분을 따랐다.”
경건한 채 하는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그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레위의 집에 가셔서 그와 많은 다른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죄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금하는 순결한 법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비판이 예수님을 차갑게 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누가복음 19:10) 오셨다고 지적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