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하는 일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씨앗이 자라고 첫 열매를 맺으면 이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귀한 음료, 맛좋은 덩어리의 빵 또는 기쁨 가득한 식사를 만들기도 합니다. 몇몇 열매는 수확을 하기 전까지 극도의 보살핌과 인내, 그리고 노력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도움과 보살핌 없이 자라는 열매들도 있습니다. 열매들은 단순히 나무나 가지에서 따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까지도 그 권능이 사라지지 않는 축복을 눈에 보이는 창조물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물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뿌리고, 익어가고, 추수하는 모든 순리에 대한 실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를 지상에 세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구원의 사역을 세우시고 그분의 뜻에 따라 발전 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셨고 그분의 아들의 희생을 통해 구원의 기반을 놓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교회에 사도를 보내셨고 성례를 통해 인류가 구원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왔고, 아직까지도 오고 있는 중 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관찰자로써 모든 것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들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모든 것이 수확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로 충분한 것입니까? 예배 후에 “오늘 예배 말씀은 아름다운 말씀이었고 성가대에 흠뻑 취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추수의 때에 맞춰 우리가 익어가는 것이 중요하고 이러한 논지를 지키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자동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몫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공을 들여야 하며 그리스도의 새로운 창조물 즉,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안에 형성 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선한 은사가 우리 안에서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확실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기여입니다. 이 기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비하면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가절하 해서도 안 될 기여입니다.
태초의 아담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공을 들여야만 합니다.
크게 보면, 우리의 임무는 견신례 축복 때 주님을 향해 맺은 서약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나는 악마와 그 모든 사탄의 일과 사탄의 길을 버리고” 이는 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에 죄를 위한 공간은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가치 있어 지는 것을 죄가 방해하기 때문이고, 악마의 일과 길이, 씨앗과 같이 익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스스로의 성장과 가치에 책임이 있듯이, 우리 또한 공동체로써 추수에 기여해야 함을 요구받습니다. 공동체로써, 회중으로써 우리의 과업은 우리의 형제들을 위로해주고, 자매들을 거드는 것이며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가치 있어 질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시험과 시련이 올지라도 충실하게 남아있게 하는 것이며, 낙담 할 때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추수의 시기가 다가옴에 모든 손길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서로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작은 기여를 축복해 주실 때, 추수는 풍성해 질 것입니다.
사도장의 예배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