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신다! 다시 한 번 말해주시겠어요? 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가?” 우리는 이미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어쩌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느끼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유를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단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분개했습니다. 자신들은 노예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로마가 유대인이 살던 땅을 점령하긴 했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슈나이더 사도장께서는 2018년 4월 15일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예배를 이러한 모순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사도장께서는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날의 기독교인들은 당시 유대인들만큼 강건할까요? 외부의 영향력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요? 사도장께서는 “돈의 권세가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산재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남아있습니다.”라고 말씀을 계속 하셨습니다.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주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있던 이들에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죄의 노예인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이러한 간극은 아담과 이브가 뱀의 말을 따른 이래로 계속해서 존재해왔습니다. 인류는 악의 속박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과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겠다고 결심한 일을 행할 자유가 있습니다.”
물세례는 그분께로 향하는 길목의 첫 걸음입니다. 사도장께서는 “이 자유는 계속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이 길에 동행하십니다. 말씀 안에서의 효력과 성만찬의 권능으로 그렇게 해주십니다.
율법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효력을 지닌 법은 오직 율법뿐이었습니다. 누구든 이 율법의 요구조건을 실천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감내해야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류는 옳다고 여겨지는 일을 강요받았습니다.
오늘 날은 이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인침을 통해 우리의 마음 안에 부어졌고,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강요받지 않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과 영원히 교제를 나누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보상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사도장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으시고 자유에 따라, 기꺼이, 베푸셨다고 설명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전하셨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역시 그분께서 하신 것처럼, 기꺼이 베풀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그분을 섬깁시다.”
그러나 보상을 희망하는 양상 말고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분의 호의를 희망하는 것 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한 개인의 본질적인 결점이나 혹은 그분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것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모든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자기중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다.” 이것이 자유입니까? 사도장께서는 “아닙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기독교인의 자유는 각각의 다른 구성원을 섬기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지배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이웃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더 사랑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심사가 이웃의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우리의 생각들이 다른 이들의 생각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만물의 척도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것은 생각 자체가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장께서는 예배의 말미에 “우리는 이웃을 지배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돕고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받아 들입시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는 부활의 육신을 받아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며, 새로운 창조물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 창조물은 그 자체로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이자, 사명이며, 우리의 길입니다.”라고 결론을 맺으셨습니다.
<영문 참조 : http://nac.today/en/158033/5777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