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국제 소식 및 말씀
왕 중의 왕께서는 스스로를 낮추시고 가장 험악한 범죄자들이 당할 법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로써 죄인들은 육적인 죽음을 견딜 필요가 없게 되었고, 부활하신 그분을 통해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를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 4월 예배 말씀의 주제들이 있습니다.
사월은 종려주일, 성금요일, 부활절을 둘러싼 사건들로 특징지어집니다. 연이은 주일 예배 주제 시리즈는 “부활 주간”입니다. 부활 이후에서 조차도 그분을 따랐던 이들을,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동행하시고 강건하게 하셨는지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실제 통치하시는 방법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사람들이 예수님께 품은 기대감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경 낭독의 마지막 구간에 다가서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환호성이 더 명확히 들려옵니다.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왕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집중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왕국은 육적인 통치와 관련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명백합니다. 지인들, 가까이 동행한 이들 조차도 이 점을 되돌아서 생각했을 때에만 이해했습니다. 종려 주일 예배는 이러한 하나님의 왕국이 가진 영적 측면을 탐색할 예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이시며, 오늘 날까지도 그분의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그분의 통치는 모두를 위한 사랑과 은혜로 특징지어집니다.
사람의 죽음
성금요일, 누가복음 중 일부를 낭독하는 성경 낭독 시간에는 예수님의 사형선고에 관해 다루는 구절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길 원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어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에게만 내려졌던 퍽 모욕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흉악한 죄인으로써의 죽음을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순간들을 겪어내셨고, 진정한 사람의 존재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러한 완전한 희생은 모든 죄인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것과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얻기 위해 예수님과 같은 방식의 죽음을 당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일한 필요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안에서 삽니다.
하나님의 생명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이 질문은 부활절 성경 낭독에서 부활절이라는 사건을 요약한 부분으로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 기간 중 죽음 이후에도 함께 할 것이라는 점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 많은 이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그리고 베드로, 사도들, 심지어는 500여명의 형제들이 모인 가운데에 나타나셨습니다.
이후 오늘 날에도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이렇게 확신을 주십니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19)
의심을 문제 삼지 않는 신뢰
역시 부활 주간인 4월의 세 번째 주일 예배 말씀에서는 초기 사도들의 의심에 대해 초점을 둡니다. 예수님의 가장 최측근에 있었던 관련자들이 다양한 증언에 기반을 둔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극복 과정에서, 관점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들에게 나타나시고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것”을 두고 꾸짖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4절) 제자들의 의심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의심하는 이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순전히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크나큰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앙은 납득할 수 있는 의심을 극복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어떠한 사람의 의심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뒤흔들 수는 없습니다.
미래의 자아에 대한 의문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한 말씀이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괴수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 네 번째 주일의 성경 말씀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겠다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 기독교인을 억압하던 사람이 주님을 위한 전사로 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죄인이라 칭하며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섬김을 위해 죄인을 부르십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진솔한 내면의 성찰이 포함되며, 우리는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계를 넘어
4월의 마지막 주일 위대한 사명을 탐색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사명을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을 때 모든 국경과, 그들에게 알려진 한계를 초월하며, 전 세계 곳곳에 세례를 베풀고 가르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했습니다.
오늘 날 사도 직분의 가르침에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맥락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의 형상을 들어 보여주십니다. “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기에는 사도 직분의 보냄을 받은 모든 교역자가 포합됩니다.
한 편 이러한 사명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이들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바로 다음의 성경 구절, 예수님의 약속이 적용됩니다.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3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