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의 (New Apostolic Church) 역사
새사도교회의 역사 요약
(새사도교회의 설립과 역사의 상세한 내용은 별도로 제공되는 책자인 ‘하나님 왕국의 역사’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종교개혁 이후의 기독교인들의 교회는 18세기에 이르자, 살아서 활동하는 성령이 주어졌던 초대교회의 시대와 같은 그러한 하나님의 선물이 지금 이 시대에는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기 시작하였고 그러한 생각을 가진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인들과 개인적인 신학자의 수는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830년경, 그러한 성령의 회복운동이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언과 치유가 가득하던 시기였으며, 성령의 선물이 흘러나옴을 새롭게 하기 위한 여러 그룹들의 기도도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년 동안 이러한 기도그룹과 성경연구 그룹들이 발전을 거듭하던 중 그들의 운동은 “초기 사도의 시대에 대한 갈망”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고, 나중에 그 성령과 사도직분의 회복운동은 ‘보편적 사도교회’로 불러지게 되었습니다. 그 회복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 1832년에 이르러 – 예언자에 의하여 성직의 부름을 받은 사도들이 교회를 이끌었고 교회생활의 초첨은 성령의 활동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편적 사도 회중’들은 새로이 불림을 받은 사도들의 영적인 지도아래 모든 기독교계가 하나가 되기를 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들은 그 시대의 모든 영적인 지도자들 및 세속적인 국가의 지도자들에게로 그들의 믿음의 “선언문”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비록 매우 작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편적 사도 회중’은 전 세계 기독교계의 고유한 교회구조의 발전과 고유한 성직의 개념 및 고유한 성례의식을 함께 동반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1863년에 새로운 사도들의 불림 및 성경 구절에 대한 개별적인 해석의 서로 다른 견해로의 결과로 말미암아 “함부르크 분립”이라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평신도 기독교인 사도의 전도”로 알려지게 된 조직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립으로 새사도교회의 탄생이 확정되었습니다.
사도장 직분의 도입.
사도장의 직분은 – 모든 회중의 지도자들의 수장으로서 오직 한분 – 1897년에 제정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다음의 분들이 새사도교회의 사도장의 직분을 수임해 오셨습니다.
- 프리드릭 크레프스 (1895~1905)
- 헤르만 니하우스 (1905~1930)
- 요한 고트프리트 비숍 (1930~1960)
- 왈터 슈미트 (1960년~1975)
- 언스트 스트렉하이젠 (1975~1978)
- 한스 우와일러 (1978~1988)
- 리차드 페어 (1988~2005)
- 벨헴 리버 (2005~2013)
- 진 룩 슈나이더 (2013년부터 현재까지)
1917년에 헤르만 니하우스 사도장은 성찬식 성례방법을 – 이전에는 일상적인 빵과 포도주를 떼어서 성찬축복에 사용하였으나, 얇고 납작하며 둥글게 만든 제병에 세 방울의 와인을 떨어뜨린 것을 성만찬 축복에 사용하도록 – 개정하였습니다.
세계적인 성장
왈터 슈미트 사도장은 더욱 신속한 행보로 교회의 세계적인 발전을 추진 시켰습니다. 스위스 출신 언스트 스트렉하이젠, 한스 우와일러, 리차드 페어 사도장은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서 대중의 생활속에서 활동하는 역할을 목표로 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사회분야별로 깊숙이 자리하며, 새사도교회를 다소 온화하게 이끌었습니다.
전 세계에 걸쳐 교회는 활발하고 왕성한 성장을 하였고 다수의 서로 상이한 문화와 관습을 가진 나라들 사이에 믿음의 가르침을 균등하게 하였으며, 이제 세 번째 천년기의 중대하고 의미 있는 영적목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새사도 신앙의 가르침의 초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긴박한 재림의 기대 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더욱 자세한 교회의 역사 및 “증언(각국 지도자의 선언문)”은 본 홈페이지의 “하나님의 왕국의 역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