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국제소식
만약 내가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가끔 하는 말입니다. 특히 신앙에 절망적일 때 말입니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의 저작자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가능합니다.
새해의 좌우명(모토)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입니다. 수석 사도 진-룩 슈나이더는 만약 우리의 눈이 예수님을 향해 열려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빠르고 쉽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 메시지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찬미하다’ 모토가 1월 달 주일 설교에서 조금씩 펼쳐질 예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애를 살아가시는 동안 예수님을 만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지혜, 권위에 놀라워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시는 분이였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니, 무리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 7:28~29)
사랑에 대한 권위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모세의 율법을 평가하는 방법에 있어서 바리새인들의 교리와 구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킨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으로 좋은 건강과 번영, 높은 존귀함을 염려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와 고통 받는 자들과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보증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하나님께 근접하여 누릴 수 있는 구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지 않고 그분의 뜻을 선포하고 드러냈습니다. 이것은 그를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했던 율법학자들, 서기관들과 구별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의 교제
이 권위는 오늘날에도 경험되어야 하나, 그렇게 항상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는이들은 이 신실함에 보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인지하는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부르시고 뽑으셔서 그분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의 교제로 부르셨습니다. 이 교제는 오늘날 이미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도왔다.” 주님은 종종 그분이 치유하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구원은 공로와 선한 행위, 선한 기독교인의 삶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확고한 믿음의 결과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확고부동하고 진실된 믿음입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교회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진실한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십계명, 무엇보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우선순위와 이웃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그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
이 모든 것 이후에는 무엇이 올까요?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마 9:36) 이 글을 읽으면 슬퍼집니다. 양이 없는 목동. 어떤 일이 상상되십니까? 1월 마지막 주 일요일 설교는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라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분이 마주친 많은 사람들에게는 방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 애정 어린 사랑의 보살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에만 국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인류에게도 그분의 사랑을 여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대의를 고백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길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에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이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 의견들을 물러나게 해야 합니다. 결국 이렇게 해야만 일상과 그 문제들을 초월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