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소식
말씀은 눈물을 흘리는 것에 관한 것이었지만, 상황은 슬픔을 제외한 그 모든 것이었습니다! 반면,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지난 2020년 11월 15일 스트라스부르 (프랑스)에서 있었던 수석 사도의 예배 말씀에서 나온 메시지입니다.
슈나이더 수석사도께서는 원래 해당 주일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방문 계획을 세우셨지만 현 COVID19 상황과 관련하여 여정을 취소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석사도께서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회중들을 위한 온라인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친교의 시간을 갖고 싶었고, 이번 예배를 여러분과 함께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수석사도께서는 시작하는 말씀으로 이와 같이 전하셨습니다.
우는 것에 대하여
이번 예배 말씀의 기반이 된 두 문장의 말씀은 요한복음 20장 13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구절은 부활절 부활하신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내신 사건에 관한 말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의 밀접한 제자였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우러나왔습니다.” 수석 사도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심을 당하신 후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그분의 몸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무엇이든 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무덤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분명 주님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대신 동산지기를 만납니다.”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이 실제로는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서서히 스며들 듯이 나타났습니다.
오늘 날의 마리아들
수석 사도께서는 오늘 날에도 이와 같은 마리아들이 많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감사함과 사랑으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섬기고, 헌물과 희생을 하고, 역경과 여타 환란이 닥쳐올 때에도 신실함을 유지합니다.” 이는 남아메리카의 형제자매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형태의 어려움, 병, 극심한 경제적 고난과 폭력 및 범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주님 앞에 신실함을 유지했습니다. “나는 한 가지 분명하게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그러한 점을 찬미하고, 크나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괴로움 중의 눈물
물론 때로는 의구심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지금 어디 계시지? 주님께서 힘을 잃으신 걸까? 날 더 이상 돕지 못하시는 거야. 나에겐 남아있는 힘이 없어.” 수석 사도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정확히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는 알길 원하십니다. “네가 왜 우느냐?” 수석 사도께서는 주님께서 약해진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규탄의 질문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헌신의 표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는 것과 우리의 고통에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시길 원하십니다.” 동시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하라. 마음을 열라. 계속해서 나에게 말하라.”
회한의 눈물
“네가 왜 우느냐?” 베드로 역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채포 당하신 뒤, 베드로는 세 번 씩이나 그분을 부인했습니다. 암탉이 울자 예수님께서 그를 보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는 주님을 향한 그의 사랑을 바꾼 것이 아니라고 수석사도께서는 예배 중 전하셨습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유혹, 그리고 죄에 넘어집니다. 그리곤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왜 우느냐?’” 진정한 회한은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여기 있다. 내가 너를 지켜준다. 내가 너를 위해 죽었다. 나는 너를 용서한다.’”
슬픔의 눈물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슬픔이 닥쳐올 때가 그렇습니다. 수석사도께서는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조차도 이해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자로의 무덤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짧은 양상 속에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러한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깊은 슬픔이 빠르게 지나가지 않음을 압니다. “여러분은 언제라도 주 예수님께 가서 그분의 어깨에 기대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이해하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죽음은 우리를 영원히 갈라놓지 못합니다. 재결합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 가까운 이들을 위한 눈물
예수님께서 매우 잘 이해해주실 또 다른 눈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예배를 참석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수석 사도께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해 슬퍼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모으고 싶었지만, 그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위안은 여기서도 적용됩니다. ‘나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이러한 위로를 많은 형제자매, 그리고 부모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들을 계속해서 사랑하십시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분께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