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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는 약 7,000개의 언어가 사용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일까요? 사람들이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언어는 단순히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상입니다. 국제 모국어의 날의 목적은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의 연대를 촉진하는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매년 2월 21일을 전 세계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2주마다 한 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문화적, 지적 유산이 사라진다.”고 지적합니다. 모든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눈(雪)은 눈(雪)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인들처럼 하세요. 외국어는 어휘와 용어가 다를 뿐만 아니라 단어의 의미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중부 및 남부 유럽 사람들은 보통 ‘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눈(雪)과 관련된 약 50개의 다른 단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는 또한 우리가 현실을 추론할 수 있게 해줍니다. 눈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눈인가 아니면 이글루(눈벽돌이나 눈으로 만든 집)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눈인가? 가 다릅니다.
모국어
언어는 말하는 이가 미리 경험한 환경을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출생 전부터 시작되며 종종 생후 몇 년 동안 아기의 어머니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를 ‘모국어’라고 부르지만, 물론 생물학적 어머니가 아니라 가까운 보호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고 모국어라고 부릅니다. 모국어라는 용어는 중세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라틴어에서 링구아 마테라(어머니 말)로 처음 등장합니다. 과학에서는 사람이 자라면서 처음 배우는 언어인 모국어와 유산 언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국어는 해당 지역의 지배적인 언어가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 가정에서 배운 언어를 말합니다.
신앙, 사랑, 그리고 소망
성경의 일부 단어는 보편적으로 유효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거주 지역에 따라 눈이 다르게 이해되는 것처럼, 익숙한 기독교 용어들, 즉 영원, 영혼, 하나님도 다르게 이해됩니다. 해석도 다양합니다.
신앙
실제로 얼마나 많은 교파가 있나요? 여러 세계 종교가 서로 경쟁하고 있으며, 수십 개의 정령숭배 종교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독교는 가장 큰 신앙의 가족이며, 여기서 ‘가족’은 가장 넓은 의미로 이해 되어야야 합니다. 전 세계 20억 명의 기독교인이 모두 같은 것을 믿고 있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인을 특징 짓고 그들을 다른 세계 종교들과 구별해야 하는 것조차도,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즉 지으신 것이 아니라 나신 하나님, 아버지와 한 본질로 이루어진 하나님이라는 사실조차 더 이상 의심 없이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조조차도(제가 알기로는) 신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사랑
사랑은 어려운 개념이 된 것 같습니다. 성경의 문맥조차도 먼 미래로 밀려났고, 이제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 34-35). 예수 그리스도는, 만약 당신이 그분을 조금이라도 믿는다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이중 계명의 성취를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그리스도인 사랑과 이웃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요? 작은 언어가 점차 사라지듯 사랑의 언어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웃과 타인, 낯선 사람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끊임없이 깨어지고 있는 계명 중 하나입니다.
희망
그렇다면 모두가 알다시피, 마지막에 죽는 희망은 어떨까요? 희망의 초점은 보이지 않는 것, 생각할 수 없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 안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어찌하여 아직도 보이는 것을 바라리요?”(로마서 8:24).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때때로 약간의 ‘현실 도피적’ 사고방식을 채택하고 현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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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NKCoolper – stock.adobe.com
2025.02.21.
Author: Peter Joha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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