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은 익숙한 인간의 특성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길 원하고, 옆집에 사는 사람 또는 우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해 알길 원하고, 신문 속 사진에 찍힌 사람 혹은 뉴스에서 보는 이름, 투표용지에 우리가 도장을 찍은 정치인, 은행에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창구 직원, 지하철에서 우리 건너편에 앉은 상대편 여행객들에 대해 알길 원합니다. 우리 사회에 산재한 많은 문제들은 사실 타인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의 결과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이들은 그들의 상대편 사람들에 대해서 잘 알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이웃에 대해 아는 것에 대한 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이웃을 위해 죽으심을 당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웃에게 구원을, 즉 그분과 함께하는 영원한 교제를 주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압니다. 아마도 가장 빠르다면 내일 누군가에게, 또는 아마도 저 세상에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다는 통찰력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통찰력이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결론 혹은 그 사람들을 향한 부적절한 접근을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알고 계심을 내가 안다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그 모습 그 자체를 사랑하고 계심을 내가 안다면, 나는 그 어떠한 사람도 비난하거나 거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내 모습 그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어쩌면 나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삐딱한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왜 저렇게 말 하는지, 왜 저렇게 생각하는지, 또는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떤 것도 알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 사람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을!
사도장님의 예배말씀에서 나온 사색의 양식 (2017년 05월 호 우리의 가족(Our Family) 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