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상황들 – 이것은 1900년대 통틀어 계속 만연했습니다. 교회 건물이 징발되고, 종교 간 갈등으로 교회가 파괴되고, 방화로 인해 불이 나고. 1970년대 알폰소 탄사히티크노가 당시 사제이자 지역 렉터로서 섬겼던 타시크말라랴 회중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지역 교회의 골격을 제공하다
“엄격한 주교”라고 불렸던 알폰소 고 지역사도는 1985년 자신의 아버지를 계승해 주교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당시 교회 지도부 사이에서는 아주 젊은 교역자로 깜짝 등장한 것입니다. 당사자 역시도 선한 겁을 먹게 이르렀습니다. 훗날 헨드라 탄사흐사미 지역사도로 알려지게 된 탄 비안 싱 지역사도는 1951년 거대한 교파의 분파 움직임 이후, 인도네시아 내 새 사도 교회를 재정비 했고, 그중 120개 회중 12,000명의 구성원을 자신의 아들이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약 25년 뒤, 회중의 수는 두 배 가량 늘었고, 회중의 수도 1.5배 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알폰소 지역사도는 교회의 골격을 제공했습니다. 회중에 교회 책자를 보관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도입하고, 지역 사무국을 둔 중앙 교회 사무처를 지었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찬송가, 성가대 도입, 기악, 전국 젊은이의 날 행사 도입, 교역자와 선생 훈련과 같은 일도 최초로 시작했습니다.
극도의 결심을 가진 전사
“최적의 장소, 최적의 시대에 있었던 최적의 인물” 우르스 헤바이젠 지역사도는 자신의 전임 지역사도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알폰소 지역사도께서는 자신의 국가, 자신의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계셨고, 교회가 그 사회에 어떻게 위치해야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알폰소 지역사도께서는 무언가에 확신이 생기면 극한의 결심을 품고 그것을 위해 싸우던 전사였습니다. 혼자가 될 때까지 그렇게 싸운 것입니다. “알폰소 지역사도께서는 매우 엄격하게 대할 줄도 아셨지만,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어려운 시대에 꼭 필요했던,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알폰소 지역사도께서는 건강이 악화되어 2009년 1월 은퇴를 즐겁게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2016년 9월 18일 일요일 이른 새벽, 72세의 나이로 가족의 품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수요일 장례 예배는 고린도후서 4:16-18절 말씀으로 집전되었습니다. 본 구절은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줍니다.”라는 말씀으로 결론을 짓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