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국제 소식, 사색 그리고 주요 예배 말씀
시작을 표시하는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심으로 우리와의 거리를 넓히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에게 더 가까워지셨습니다. 부활절의 기간을 끝마치는 승천절에 관한 사색이 여기 있습니다.
부활절 기간이라는 의식적 기간과 그 기간 동안 벌어지는 모든 것은 50일 동안 지속되며 성령강림절 주일에 정점에 달합니다. 승천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이며 부활절 40일 후 기념합니다. 그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버리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처음으로 제자들을 떠나셨던 성금요일, 제자들은 땅을 쳤습니다. 그러나 승천절, 부활절의 사건은 제자들에게 전혀 다른 효력을 지녔습니다. 유명 신학자이자 작곡가인 디이트리히 본회퍼는 이러한 말로 그 효력을 표현했습니다. “부활절을 아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사이
주님의 부활절 이후 모습은, 제자들이 시신을 몰래 훔쳤고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고 증언하는 것이라는 가짜 뉴스와는 정반대였습니다.
부활 이후 그리스도께서는 다시금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진실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의심하던 도마와 같은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셨고, 다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그리고 사명과 권한을 주셨습니다. 대사명 말고도 이 시기 동안 예수님께서는 위로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장 8절)
승천 이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늘로의 승천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제자들이 직접 인간의 천성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가는지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제자들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방문을 걸어 잠궈야 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넘치는 기쁨으로, 두려움에 떨며 스스로를 숨겼던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셋방에 다시 돌아와 여성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령강림절의 축제를 예비했습니다.
승천 당일
여러 성경 구절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믿음의 두 번째 항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하늘 아버지의 편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인이시며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전에 드렸던 대사제의 기도처럼 직접 지속적으로 중재를 하고 계시다는 것은 큰 확신을 줍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요한복음 17장 19-20절)
승천이 주는 답
승천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오늘 날의 질문에 답을 주십니다. “무엇이 앞에 놓여있을까?” “어디서 내가 환영 받을까?” 그러나 그 답변은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내가 그곳에 갈 수 있나?”에 대한 답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가 영생과 진리를 위해 따라야하는 길이십니다. 그러니 미지의 여정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여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나침반이시자 동반자이십니다.
승천은 가까움을 뜻합니다.
승천은 분리, 멀리 떨어진 재회를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라는 목표를 마음에 두셨고 이에 따라 오늘 날 우리 역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강림절이라는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거리를 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십니다. 마틴 루터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우리와 멀리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승천하신 뒤에 우리와 가까워지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 말씀, 성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 안에 가까이 계십니다. 믿는 회중은 늘 기대에 찬 회중입니다. 애태우는 회중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는 회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