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은 특별한 관심의 날인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그러한 관례의 날이 필요할까요? 그렇습니다. 왜냐면 잊혀져서는 안 되거나 제외되거나, 더 나쁜 것은 잃어버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사이의 병자들은 회중의 중앙에 있고, 우리들의 마음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1993년 관심의 날로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잊혀져온 병자들이 있습니다. 부모님 아파트의 작은 방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숨겨져 있었던 작은 토비아스(독일의 동화) 같은 경우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면 그 방은 잠겨 버립니다. 그의 부모와 친한 이들만이 토비아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의 신체적, 지적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부터 이해하기까지 다양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럴 까요? 그것에는 깊은 역사적, 문화적 이유가 있습니. 부모가 아들을 숨겼다는 이유로 도매의 비난을 받을 수 없듯이, 부모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악으로 오명을 씌울 수도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 후 평생 동안 다른 아무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질병은 죄의 결과입니까? 아닙니다!
과거에, 아픈 사람들은 그들이 뭔가 잘못했었기 때문이라는 오해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그릇된 생각이었습니다. 이미 성경은 아픈 사람들이 삶의 밝은 면을 거부당했다고 말합니다. 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쫓겨나 마을의 외곽 변두리에서 살도록 강요당했습니다. 발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것으로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들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 최선 이었습니다. 질병은 죄가 있다는 분명한 증거로 여겨졌습니다.
죄에 대한 징벌로서의 질병! 현대 신학에도 이에 대한 단어가 있습니다. : 응징의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고대 동양에서 널리 알려지고 행해졌으며 지금도 존재합니다. 병을 종교와 연관 지어 비난 하는 것은 의사나 과학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신학자와 사제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긴장된 영역에서 자란 예수님은 그러한 생각을 단호하게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그분은 질병이 죄의 결과라는 해석을 명백히 반대하셨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이렇게 앞 못 보는 사람으로 태어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 때문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 중략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하여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요한복음 9:2~3) 여기, 특히 요한복음에서 신학적사상의 초점은 엑소시즘(악령쫒기)이 아닙니다. 대신, 치료의 의학적 기술을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퇴마사가 아니라 의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백부장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인에게서조차도 그런 위대한 믿음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 즉 아픈 사람이 죄인일지라도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태복음 8:5-13)
그리고 마침내 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겪어야 했고, 고문을 당하고 공개적으로 처형을 당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의 사심 없는 희생은 질병과 죽음이 죄의 발상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충분히 역사가 흐른.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현대인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계 병자의 날은 병자들에 대해 생각하거나 연락함으로써 자신을 병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입니다. “왜 전화하지 않습니까.” 진-룩 슈나이더 수석사도께서는 얼마 전 회중들에게 호소하셨습니다. 아픈 사람에게 전화하거나 방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은 항상 보람이 있는 일입니다. 병든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때,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 곧 너희가 이 형제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마태복음 25:40)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관심의 날은 의사, 간호사, 요양원 직원들 및 노인들의 가정 내에 돌봄을 제공하는 모든 의료 종사자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병은 삶의 일부분입니다. 지금, 질병의 대유행 기간 동안,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의 잘 됨을 기원하며, 때때로 전화하면서 서로를 치유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