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국제소식
이것은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입니다. 도시 밖 동굴에서는 악마들이 대혼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시며 악마를 쫓아내셨습니다.
폭풍우를 잠잠케 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를 계속 건넜습니다. 호수 건너편에서는 그 내용이 거룩한 예배의 일부가 아닌 거의 불안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악마의 세력들에 의해 완전히 통제된 채 무덤들 사이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과 대화를 하신 후 돼지 떼에 보내시니 돼지 떼가 벼랑 끝으로 달려가 호수에 뛰어들어 익사하게 하여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마태복음 8:28-34의 구절은 그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불쌍하고 위험합니다
마태복음에는 두 명의 귀신들린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 반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한명 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두 복음서에는 그 둘 중 누가 대변자인지 아니면 둘 중 더 눈에 띄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생활환경이 비참했다는 것입니다.
악마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에 대적할 힘이 없었던 귀신들린 남자는 사회와 단절된 채 무덤들 사이에서 그 자신의 존재를 감추었습니다. 그는 너무 폭력적이어서 아무도 감히 그 길을 지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베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교제가 불가능 했습니다. 그는 그 지역의 주민들에게 위험한 존재가 되었고, 쇠 수갑도 그를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악은 선을 알아봅니다
세 복음서 모두 이 사람이 귀신이 들렸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악은 힘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도 나타납니다. CNAC 4.1.2.)
이 귀신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분의 존재만으로도 이 의인화된 악은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역할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동안 이 악한 자는 자신이 대적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악은 이름을 분명히 했습니다
고대 개념에 따르면 악을 쫒아내기 위해서는 악의 이름을 실제로 명명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마가와 누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귀신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이름은 군단입니다. 우리는 많습니다.”
점령된 팔레스타인에서 로마 군인들은 약 2,000명 정도가 한 군단의 절반으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악마 군단이 인간에게서 다른 생명체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큰 무리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왜 돼지일까요? 우선, 유대 기독교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깁니다. 게다가 동물은 이교도 숭배의 상징으로 간주됩니다. 설화가 고대 문화의 특정한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고대 사람들이 그들의 신에게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합니다.
선은 그 권능을 드러낸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권세와 악을 다스리는 그분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영이 그분에게 복종하지만 선과 악 사이에는 일치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귀신이 예수님께 “당신은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명백해 집니다.
이 사건의 신화적 요소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권위는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호수의 폭풍을 잠잠하게 하심으로 자연의 힘을 다스리는 능력을 나타내셨고, 이제 그분은 의인화된 악에 대한 완전한 권위도 보이셨습니다.
오늘날도 악마가 있나요?
그리고 오늘? 오늘날 사람들도 특정한 영적 능력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성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기심, 무자비함, 시기 또는 기타 제약들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사악한 동기를 인지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악마” 앞에서 완전히 무력감을 느낍니다. 스스로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들조차 계속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며, 자신의 불완전성에 완전히 굴복하고 악에 굴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의 힘은 악의 힘보다 더 컸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능력의 일부를 공유하기까지 합니다! 성만찬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본성을 신자와 나누십니다. 이 본성은 완벽한 극복을 향한 강건함에 의해 구별되며, 이로써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허락 받습니다. (CNAC 8.2.20). 이 완전한 능력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악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함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