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년 3월 새로운 소식 및 말씀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신 분입니다. 양 떼를 알고 계십니다. 양 떼를 위해 양식을 공급해주시고, 보살펴주시며, 결국 그들을 위해 생명까지 바치셨습니다. 3월 예배는 이제 막 시작된 사순절을 다소 다른 관점에서 다루었습니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요한복음 10장 16절의 말씀이 3월 한 달의 시작을 알립니다.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무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라며 모든 사람을 부르십니다. 출신과 지위에 관계없이 말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구별도 두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라는 용어는 사람들이 스스로가 속한 세상과 곳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서로 다른 영적 영역의 형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지, 멀리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우리의 일부분이 되는 것은 3월 첫 째 주일 고인을 위한 예배의 주제였습니다.
고통스러운 의문들
실망감은 우리 신앙을 약하게 하고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아직 재림하시지 않으셨을까? 왜 신앙이 내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가? 왜 나의 담임 목사는 저렇게 짜증스러울까? 이러한 의문들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초기 기독교 회중에서도 나온 의문들 이었습니다.
초기 유대인 기독교 집단에게 쓰여진 히브리서에서는 이에 대한 논박에 최선을 다합니다. 히브리서 4장 14-15절에선는 백성들과 함께 고통 받는 대제사장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이 모든 일을 직접 겪으셨기 때문에 백성들을 이해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짖으시고, 눈물을 흘리시고, 구원을 위해 간청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백성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주일의 초점입니다.
악에 대항한 메시지
그 다음 주일 예배에서는 악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탐색합니다. 악?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인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불운을 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 봅니다. 악에 대해 말하면 많은 이들이 교회에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모진 형상에 불과하다 생각합니다. 정신을 차리게 될 때는 그들이 직접 악에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이 있을 때입니다.
현실적인 이들은 갈라디아서 1장 3절-4절에서 “악한 세대”를 말하는 것에 대해 이해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분리된 상태에 노출되고 또 스스로의 힘으로는 악의 권능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악의 권능을 극복해내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다룰 가치가 있는 메시지입니다.
잔칫상으로 오라!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은 성경에서 무척 유명한 구절 중 하나입니다. 5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위한 성경의 중심에 계시기 때문에, 시편 23편의 이 구절은 성만찬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은 누구입니까? “보는 앞에서”라는 구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잔칫상에 누가 초청받습니까? 예수님 그리스도께서 주님의 식탁을 세우신 방법과 오늘 날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답과 회상이 네 번째 주일의 초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