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차 소식
사순절 기간이 절정에 다가 가고 있습니다. 고난 주간은 예수님의 다시 사심에 대한 승리의 부활절 메시지로서 그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여전히 십자가가 있습니다.
교회 달력에서, 다가오는 주간은 가장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며, 다채롭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숨을 죽입니다. 그들은 부활절 아침에 하나님께 찬양의 찬송을 부를 수 있기까지 무엇보다 주님과 함께 비탄해하며 예수님의 죽음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리고 주님의 부활은 4월의 한달동안 대예배의 근본적인 주제입니다. 수난은 고통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부활은 희망과 기쁨을 의미합니다.
성만찬에서의 친교.
종려주일의 날이 밝기 전에, 우리는 주님의 만찬을 기억할 것입니다. 4월의 첫 번째 주일날, 우리는 그분의 사도들과 함께 한 주님의 친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들의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기념하셨습니다. 뒤이어 그분께서는 사도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만찬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낯설고 흠칫 놀라운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배반당한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은, 인간의 악의가 승리를 쟁취한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만찬 시간은, 악하거나 불쾌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사랑과 구원이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둔 날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스러운 주간
종려주일은 침묵과 성찰의 시간인 성스러운 주간이 시작됨의 표시입니다. 성금요일까지 가는 한 주간은 참혹하였습니다. 부활절 이전 주일인 종려주일에 이미, 예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분명했습니다.: 잘못된 기대, 성의 없는 호산나(신의 찬미) 외침, 거부 그리고 위선. 그곳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그룹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 가신 것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부정과 분노를 표하였습니다. 이것이 메시야가 나타나야 하는 방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의의와 그분의 가르침으로 예수님을 납득했던 이들에게 십자가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스도를 따라 죽는 것은 모든 기독교인의 숙명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신 것처럼, 그들도 죄로부터 죽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은 우리가 죄를 포기하고 단호하게 주님을 따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진 룩 슈나이더 사도장은 성금요일 예배를 위한 대예배 인도 말씀의 기사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주시고 죄를 포기하며 그분을 충실히 따르도록 사랑을 되돌려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절의 밝은 빛.
마침내, 부활절 아침은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살아 나셨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곧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며,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하였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새번역)” (누가복음 24:46-48) 믿는 이들은 이 구원의 사건에 증인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나셨음을 알려야 합니다.
주님에 대해 확신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이 기쁨은 부활절 이후 시간에도 가라앉거나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절은 기독교 교회의 최초의 중심적인 메시지이며, 그리고 오늘날의 기독교 교인들이 확신을 가지고 선포하고 전파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4, 새번역)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으로부터 다시 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