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소식 :
모국어는 마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어린 아이의 손과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공간에서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으로 각각의 개인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매년 2월 21일 기념되는 유네스코 국제 모국어의 날에 대한 성찰입니다.
모국어라는 주제를 떠올릴 때마다 비자발적인 형상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헬렌 켈러 자서전을 읽어보지 못했거나 미라클 워커라는 영화를 보지 못한 이가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추천을 드리고 싶습니다. 삶의 전환을 마주하는 가장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 보장합니다.
헬렌 켈러는 2세가 채 되기 전 병환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언어를 발달시킬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세상이 어떤지 상상이 가십니까? 헬렌 켈러에게는 삶 전체의 동반자인 앤 설리반 선생이 있었는데, 설리반 선생님은 수화를 통해 소통의 방식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대격변이 일어납니다.
혼돈에 질서를 가져다주는 언어
헬렌 켈러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있었던 순간으로, 나의 표제에 언급한 사건이 있습니다. 극적이고, 심장이 떨리고, 영혼이 움직이는 깨달음으로 자신의 손에 흘린 액체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물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혼돈의 삶에 질서가 생겼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 이러한 슬픈 환경에 처해있지 않는 다는 행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우리 세상의 질서를 말로 자동적으로 인지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두고 소통할 수 있는 방대한 언어를 발달시킵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모국어라는 근간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모국어는 우리의 개성, 사회,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틀을 잡아 줍니다. 개념 형성의 능력을 양산하고 비판적 사고, 문학적 기술과 같은 다른 여러 기술의 발달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두 번째 언어를 배울 때, 예를 들면, 비판적 사고를 다시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닙니까?
언어는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게 해준다.
누군가는 이러한 양상에 대해 방대하게 기술할 수 있겠지만, 나는 모국어의 문학적 기술과 신앙의 관점에서 이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집중하길 원합니다. 나의 깊숙한 초기 기억에 내가 들었던 혹은 읽었던 성경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주일학교 선생님에 관계없이 나는 나의 상상력을 흥미로운 등장인물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로 바꾸었습니다. 모국어의 말을 통해 친숙하게 다가왔고, 깊은 호기심과 흥미, 인간이신 예수님의 사랑이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청년이 되어 나는 문학을 공부하며, 여러 작가의 글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성경의 요소들은 필독이라는 것을 발견하여 깜작 놀랐습니다. 서로 다른 인물의 성격을 이해하고, 다양한 철학적 논쟁, 삶의 의미라는 질문을 다룬 몇몇의 주제들은 성경을 참고 자료로 삼고 쓰인 것입니다.
이러한 문학적 관점에서 나는 늘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시적 상상력에 매료됩니다. 이는 삶에 선명하고 아름다운 설명과 표현을 더해줍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미래! 라는 우리의 모토를 두고 이 주제에 대한 몇 가지 예문을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황홀한 시기에 대하여 우리는 이렇게 읽습니다. “하늘의 별들은, 무화과나무가 거센 바람에 흔들려서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듯이, 떨어졌습니다.”(요한계시록 6:13)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데살로니가전서 4:16)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읽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요한계시록 19:6-9) 하나님의 나라 (요한계시록 21장).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영혼에게 말을 거는 언어
모국어가 신앙의 관점에서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개인적인 경험은 내가 외국으로 여행을 갈 때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그곳에서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 때 퍽 편안함을 느끼는데, 그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한 사제가 섬김을 위해 성단으로 불러졌습니다. 계획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사제는 나의 모국어로 섬겨주었습니다.
그 순간 내 영혼과 정신에 가해진 충격은 그 사제의 메시지를 신경 쓸 겨를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나를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준 나의 모국어를 듣게 되니 내 내면의 존재는 눈물을 흘리게 된 것입니다. 그 설교의 내용을 잊은지 오래지만, 그 때의 감정은 그 사건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닭살이 돋게 만듭니다.
모국어의 가치가 항살 밝고, 기념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