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영혼”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왜 더 이상 이 개념에 대해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진-룩 슈나이더 사도장께서는 세 가지 좋은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큰 영향을 가집니다.
지난 2017년 3월, 캐나다의 새스커툰에서 주제된 예배의 서두, 사도장께서는 과거 자주 전달되었던 한 말씀인 “마지막 영혼이 인침을 받을 때, 주님께서 오신다.”라는 말씀을 언급했습니다. 사도장은 “오늘 날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방식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덧붙이며 세 가지 이유를 인용하셨습니다.
고정된 숫자를 넘어
인침을 받아야 할 마지막 영혼이라는 개념은 성경의 144,000이라는 숫자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 고정된 숫자의 택하심을 받은 이들은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포함되지 못한 모든 이들은 이 땅에 남아 대재앙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도장께서는 “한 편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일부가 되도록 택함을 입게 될 영혼의 숫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압니다.”라고 전하며 “이것은 우리가 셀 수 있는 개념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의 실체에 제한이 없다면, 마지막 인원을 찾길 원한다는 개념 역시 불필요해집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침은 시작일 뿐이다.
여기에 더해 사도장께서는 “성령 인침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마지막 영혼이라는 개념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를 하셨습니다. “인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침을 받는 것은 발전의 시작일 뿐입니다.”
사도장께서는 이어서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자신을 준비시켜야 하고 성결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우리는 압니다. 적어도 나는 경험을 통해 압니다.: 이는 일하라는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에서 이 생각을 사용한다면 이것이 “마지막 영혼이 준비될 때…”일 것입니다.
이기심이 아닌 이웃에 대한 사랑.
그러나 슈나이더 사도장께서는 “이러한 생각은, 조금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구원을 받고자 마지막 영혼을 찾길 원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동기였고, 이는 조금은 이기적입니다.”라며 주된 이유를 인정하셨습니다.
사도장께서는 “오늘 날 우리는 우리의 동기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믿습니다.”라며 “사랑에서 우러나와, 우리는 타인들이 우리가 받은 그것을 그대로 받길 원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구원을 나누길 원합니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사도장께서는 말미에 “우리는 우리가 미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시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기에 주님께서 오시길 원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가 받은 그대로를 받길 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신부의 동기입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준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확신합니다.”라고 말씀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영어원문 참조 : http://nac.today/en/158033/479340 http://nac.today/en/158033/479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