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소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고 사람들은 종종 개별적인 결정의 무게를 줄이고, 더 넓은 관점으로 가기 위해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개의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근본적인 내면의 가치입니다.
과학계에서는 사람들이 하루에 20,000여 가지 의사결정을 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작은 것들이며, 확실히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의 과정을 거쳐 도달하는 결정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특정한 경우는 아주 근본적인, 즉, 잠시 멈춰서 완고한 예 혹은 아니오의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이런 의사결정은 빠르고 분명하게 이뤄지지만, 누군가에는 성찰을 필요하기도 합니다.
강의, 토론, 그리고 결정
BC 1245년 경,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해 이와 같은 근본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했습니다. 약 110세의 나이에 죽음이 멀지 않았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족속 대표자들을 세겜에 불러들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모임을 의회 및 언약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북쪽 방향으로 약 20킬로미터, 모든 장로, 지도자, 재판관, 고위 관료들이 훌륭한 군사 지휘관이자 염탐꾼이었던, 일전에 모세의 종이었던 여호수아를 만났습니다.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여호수아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과거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속박으로부터 구해주셨고, 여호수아 자신이 광야의 40년 동안 백성들을 보살펴주었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끝끝내 지켰고, 여호수아 자신이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으로 백성들을 데려왔다는 점을 가르쳤습니다. 여호수아의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신뢰할 수 있는 신은 하나님뿐이시다. (참조 여호수아 24장 1-13장)
과거의 문제
당시 영리한 이들은 이것이 모두 훌륭하고 선한 것이라는데 동의했습니다. 야훼께서는 진실로 광야의 하나님이셨고, 다른 민족과의 전투에서 충실한 도움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모리 땅의 사람들에게는 바알, 아스타르테와 같은 다른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도 백성들을 보살폈고, 풍족함과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신들 역시도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시대에 활동하는 신들이라 인정하는 편이 이치에 맞는 것 아닙니까?
여호수아는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부족장들이 분명한 의사결정을 해주길 원했습니다. 스스로 개인의 결의를 사람들 앞에서 맺기도 했습니다.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참조. 여호수아 24장 15절) 여호수아는 자신의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겼던 신들도, 아모리 족속이 섬겼던 신들도 섬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현재에서의 질문
오늘 날 믿는 이들은 이 두 가지 역할 중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과의 경험을 활용하고 이를 통해 타인을 설득할 수 있도록 얻은 지식을 활용하는 여호수아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고민에 차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 부족의 지도자들입니까?
역사는 어떤 한 개인의 위치에 충분히 평행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제공합니다. 오늘 날 많은 것들이 구약, 신약 시대와는 달라졌다고 하지만, 결국 21세기 사람들은 현대적인 개념의 인간다움을 살아가며, 특정 연령을 지나게 되면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기 시작하고, 신앙은 더 이상 가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오늘 날에도 역시 이러한 근본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있는가, 혹은 반대해 있는가, 입니다.
근본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의사결정
모든 기독교인 역시 이러한 근본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수 백 년 동안, 세례 서약 및 견신례 서약을 통해 맺은 약속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인간의 몸으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분의 존재를 주님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결의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인지될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으로 여깁니다. 예수님처럼 기독교인들은 편견 없이 이웃을 대하기 위해, 그들을 돕기 위해,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과의 평화를 찾기 위해, 그들의 영생을 바라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내려야할 다수의 개인적인 의사결정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시대 때처럼, 하나님을 능가하겠다는 욕망에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배반자 유다의 경우처럼, 오늘날에도 실망과 탐욕의 유혹에 저항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마르다와 마찬가지로, 육적인, 영적인 사안에서 적절한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 오늘 날에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나 그리고 당신
주님을 위한 근본적인 의사결정은 우리가 내려야만 하는 과다한 개인적인 의사결정에도 분명한 방향과 강함을 만들어 냅니다. 이제 우리 개인들은 하나님께 응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19:5-6) 우리 각 개인은 어떤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어떤 하나님을 경배할 것인가? 여호수아는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었고 확신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