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웃 간의 올바른 연결을 찾는 것.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살피는 것. 이는 최근 수석 사도의 예배에서 나온 권면입니다. 네트워크, 동기, 위안이 강조점이었습니다.
12월 20일 일요일. 슈나이더 수석사도께서는 히브리서 4장 1절의 말씀으로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 여러분 가운데서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수석사도께서는 예배를 시작하시며, 히브리서에서 창조의 이야기를 말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뒤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이러한 안식의 날은 이제 모든 일이 끝났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여러 관점에서 진실입니다. “최초의 인류가 하나님과 친교를 맺었다는 점,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인류 간의 관계 역시도 완전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어, 동등한 본성과 존엄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에게 전적으로 의지했고, 서로를 보완했습니다. 양쪽 모두 어느 한 쪽을 지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류와 창조물 간의 관계 역시도 성공적이었습니다. “땅에서는 인류가 필요한 것을 공급했고, 인류를 그것을 가지고 노동을 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살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죄에 빠짐으로 이러한 완전함과 조화가 파괴되었습니다.
놀라운 위로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아들을 보내셨고, 다시 보내주실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 이 말씀은 위대하고 놀라운 위로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감을 상기시켜줍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불복과 상황은 “이 약속이 우리 각자 안에 존재하기에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재림을 믿어야 하고, 우리의 구원자를 믿어야만 합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가나안 정복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쇄락하게 내버려 뒀습니다. “그들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담대함이 없었기 때문에 뒤에서 서성였습니다.”(참조 민수기14장 30절) 성경은 준비를 가볍게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수석사도께서는 “주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를 통해 뒤에 서성였던 이들, 뒤쳐져야만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보여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등교하는 학생처럼
예배 말씀 중 수석 사도께서는 잘 알려진 예시를 인용하셨습니다. 주인이 더디 올 것을 확신하고 삶을 최대한 즐긴 종(마태복음 24장 48정)과 충분한 기름을 사용하지 않아 신랑이 올 때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처녀의 비유였습니다. 후자의 형상은 오늘 날에도 의미를 지닙니다. 예배에 오는 믿는 이들은 “마치 콘서트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시간을 그렇게 여긴다면 말입니다.” 혹은 어떤 이들은 예배에 올 때 “하나님이 필요하자마자 예배에 옵니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필요치 않습니다.” 슈나이더 수석 사도께서는 회중에 권면하셨습니다. “우리는 마치 등교하는 학생처럼 예배에 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준비하는 것이며, 발전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저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거부당한 이들에게 말씀하셨던 예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주님과 먹고 마신다고 해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전통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면의 발전이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께서 거부하실 두 번째 그룹이 있습니다. 선을 행했지만 그것에 의존하는 이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마음가짐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고 주님을 섬기기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지녀야 합니다.”
미래와 관계에 투자하는 것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입니까? “종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합시다.” 수석사도께서는 이렇게 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은혜를 찾고, 신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웃과 맺는 관계가 지닌 특성이기도 하며, 물질적인 것을 다루는 방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듯이,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구원을 얻길 원하든, 이웃이 구원을 얻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읍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이 땅의 자원을 대하며 그 영역 안에서 책임감을 수행합시다. 우리는 물질적인 재원이 필요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마음가짐 혹은 하나님, 이웃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