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소식
“하나님, 과부와 고아를 도우소서.” 많은 기도 속에서 공허한 문장이 되어버린 듯한 청원입니다. UN에서는 지난 7월 23일을 국제 과부의 날로 기념하고, 이는 성경의 시대 때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에게 특별한 시선을 주는 기회입니다.
동반자를 잃는 것은 황망한 일입니다. 오늘 날에도 남편의 죽음은 전 세계 많은 여인들에게 사회적, 금전적 파탄을 안기고 있습니다. 구약의 시대 남편이 없던 여성들은 낮은 수준의 삶을 영위했고, 무척 연약했습니다. 과부는 사회, 경제, 법적으로 많은 제약을 주었습니다.
도움을 간청하는 과부의 눈물을 들으신 하나님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집단, 과부, 고아, 이방인들에게 슬펼한 보살핌을 주신 방법을 말해줍니다. 그들을 돕는 특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룻기2장에서 우리는 이방인, 과부, 고아들이 곡식을 수확한 이들이 놓고간 작물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이는 신명기 24장 19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수확하는 이가 미쳐 보지 못한 곡식 다발은 과부, 고아, 이방인을 위해 남겨두었어야 했습니다. 또한 농부는 올리브 나무를 두 번 떨어낼 수 없었는데, 이방인, 과부, 고아에게 남겨진 것을 그대로 두라는 의미 였습니다. 농부들은 포도밭 역시 두 번 걸어갈 수 없었습니다. (신명기 24장 20-21절) 더불어 이 집단은 세 해 마다 작물의 십분의 일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축제의 기간에 기억되기도 했었습니다.
특별히 열왕기 시대는 약함이라는 위험에 처해진 과부를 돕는 의무 아래 있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누이를 강간한 암논을 죽이자 압살롬을 돕고자 이 제도의 장점을 취했습니다. 요압은 드고아 출신의 현명한 여인을 데려와 왕에게 데려갔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과부인 것처럼 행동하라고 말하여(사무엘하 14) 다윗이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를 돕게 했습니다. 이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차이를 이끌어낸 여인은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하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부는 가부장적인 가정으로 재결합을 시도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오르바가 한 것 처럼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혹은 재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미망인이 죽은 남편의 형 혹은 아우에게 시집을 가는 역연혼을 관리하기 위한 규칙도 있었습니다. (참고 신명기 25:5-20, 29:9-10) 창세기 38장에서는 다말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는데, 다말은 역연혼 연합 내에서 재정적 안정에 대한 권리를 위해 싸웠습니다.
특별한 임무를 지닌 과부
그러나 우리는 구약에서 궁핍한 이들에 더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얻는 과부에 대해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딧기에 나오는 유딧은 아름다우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유디트는 앗시리아 정복자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그의 환심을 사 유대인들을 구출했습니다. 유디트에 대한 욕구 만족을 위해 홀로페르네스는 술에 취했고, 유디트는 그의 목을 칼로 베어낼 수 있었습니다.
가뭄의 기간 동안 엘리야를 도운 사르밧 과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도움이라는 행위를 실천한 과부였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먼저 먹을 것을 주고, 그 뒤에 자식과 스스로를 위한 음식을 마련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 말했습니다. 사르밧은 엘리야의 말을 믿고, 궁핍한 가운데 먹을 것을 준비했습니다. 엘리야의 약속이 이뤄지자, 밀과 기름이 사르밧에게서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과부들
예수님의 시대 때에도 궁핍이 과부를 위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여성들을 보셨고, 그들의 가난을 보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41-44절과 누가복음 21장 1-4절에서 볼 수 있듯,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과부들의 가난에 대해 알고 계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 여성이 회당의 헌금함에 넣은 것은 몇 푼 안 되는 동전이었지만, 이 여성은 그 어떤 부자보다도 많은 헌금을 한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여성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신뢰로 가득 찼기 때문에, 전부 다 넣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8)
이와 같이 과부에게 정의가 거부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끈질긴 과부의 비유를 들어 과부의 법적 상황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1-8) 이 비유에서 과부는 계속해서 재판관을 찾아왔고, 결국에는 짜증이 난 재판관이 결국 그녀를 도왔습니다.
남성이 죽으면, 일반적으로 장자가 과부를 보살피고, 가정을 먹여 살립니다. 그러나 아들이 없거나, 하나뿐인 아들마저 죽게 된 과부의 상황은 무척 심각했습니다. 누가복음 7장 11-17절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 뿐인 아들을 잃은 과부를 만나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가 많았겠으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큰 연민을 느끼셨고,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위로하고, 죽은 아들의 생명을 되돌리셨습니다.
초대 교회의 과부들
초기 기독교 교회 내 과부들은 주로 구호금을 받았고, 공식적인 보살핌에 집사들을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6:1-3) 그러나 자녀가 없는 과부 중 환갑 이상의 과부들에게는 교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장려한 금욕적 생활 방식에 순응(고린도전서 7장)하기도 했지만, 돌봐야할 큰 가정이 없어 교회를 지원할 수 있었고,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집사의, 목자적 보살핌을 수행했고, 가정을 방문하며 가르침에 집중하며, 세례를 베풀고 신앙 고백을 경청했습니다. 이들은 회중 내에서 관리 기능 역시 맡을 수 있었고, 소통 중재자들이었습니다. 몇몇 과부들은 주교 직분과 함께 예배 장소에 배석되었습니다. 또한 성만찬 기념 중에도 함께 동석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들은 매우 존중받았고, 많이 기도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