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 새로운 행운. 멋지지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모두가 다 이것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오랜 근심과 걱정을 새해로 넘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충실하게 남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소망을 가지고 앞을 내다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재로써 알아야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다 하거나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틴 루터는 “자기 자신 만의 힘만 믿는 다면, 우리의 노력은 사라질 것.”이라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정확히 보았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것들이 존재하고, 외부로부터의 짐이 얹히고, 때로 우리는 우리의 바램과는 반대로 삽니다. 운명론자가 될 시간인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님께 충성하겠다고 약속한 이들은 그 모든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자신들을 지탱해주는 것을 찾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분께 충실하게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이 지니는 핵심 요소는 바로, 그분의 본을 따르는 것, 어려울 때에도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존하는 것, 섬기기를 바라는 것, 우리의 약속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2018년 신년사를 통해 진-룩 슈나이더 사도장께서 정의한 것이기도 합니다.
환란과 시험을 겪은 그리스도인은 압니다. 어려운 시기에 처하게 될 때,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그래서 결코 하나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보살펴주십니다. 강하게 해주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해주십니까? 미래에 있을 우리의 구원을 상기시켜주심으로써 그렇게 하십니다. 타인들에게 언젠가 오게 될 바로 그날에 대해서 말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면, 기독교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딘가요? 신앙 안에서의 소망은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 속에서의 닻과 같습니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은 험준한 산악 길에서 신는 한 짝의 좋은 등산화와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며, 우리 기독교인들은 서로서로에게 그분께서 오셨고, 지금도 함께 계시고, 앞으로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새 사도 교회의 1월 예배가 “세상의 구원”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모두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이번 달 말씀의 주제입니다. 예수님, 우리는 그분의 탄생을 성탄절에 기념했고, 1월 6일 기독교 탄생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은 비단 구원의 전달자가 아니라, 구원의 인격체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이는 누구라도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에는 용기가 요구됩니다.
당장, 구원이 누군가의 무릎에 턱 하고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은사인 동시에, 우리는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의향과 같은 구체적인 특성을 보여야 합니다. 이는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매일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인내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구원, 그 어떠한 것도 필적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 은사는 특히 죄의 용서함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을 통해 가능케 하신 일입니다. 이 땅에서의 공생애 동안, 예수님께서는 용서하는 분이였고, 오늘 날에도 계속해서 우리를 용서해주십니다. 이러한 용서함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께 충성으로 남아있고, 그분을 섬기고, 그분으로 인해 타인을 용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음을 통해 명백히 들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채워주십니다.
구원이라는 1월의 주제는 수 천 명을 먹이신 증가의 기적에 관한 설교 말씀으로 마무리 됩니다. 오늘 날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말씀과 성만찬이라는 성례전을 통해 계속해서 사람들을 먹여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성례전으로, 예배 때 실제로 존재 하십니다. 그러나 예배 때 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은 교회의 예배 때만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시고, 기독교인으로써의 언행에서 증거 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먹을 것을 줍시다. 영적으로 채워주는 양식을.
<영어원문 참조 : http://nac.today/en/158033/545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