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국제 소식과 말씀, 지식 …
수석사도님의 동영상 말씀이나, 동영상은 생략하고 주신 말씀만 자막의 순서대로 번역, 편집하였고 6편을 연속하여 게재합니다.
기도 사역 : 하나님께선 어떻게 들으시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고,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에서 실패 했을 때 도우십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들으시는 방법입니다. 다음은 2024년을 시작하는 신성한 예배의 여섯 부분 중 첫 번째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여러분!
우리가 함께 한 시작 기도는
진실로 무척 아름다운 신년 맞이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하늘 왕국의 영광을 보는 길을 열어주소서.”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이러한 기도에 응답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생명이 바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그 가르침 중에는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중 본질적인 요소는
바로 기도입니다.
따라서 올 해의 모토, 기도 사역 이라는 말은,
기도, 여러분의 기도에 효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늘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 이상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염려하지 말라. 내가 늘 너의 여정에 함께 하겠다.
내가 함께 하겠다.
사도 바울에게는 다른 관점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시고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고, 우리의 변호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보좌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 중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시고 용서해주길 바라십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중재한다는
말을 할 때 전하고자 했던 바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올 해 역시도 조건 없이 언제나처럼
우리를 도와주시고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준비가 되어계십니다.
바로 나를 위해 항상 옆에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표현할 바를 알지 못해도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중재하고 계신다고 전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늘 눈물에 귀 기울이시고,
우리 영혼의 간절함에 귀를 기울이심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적당한 말을 알지 못하더라도
늘 우리의 고통과 고난을 감지하십니다.
확신하건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표현할 바를 알지 못해도 그렇고
그저 한 숨만을 내뱉을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경청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이해하십니다.
모든 염려가 그분께는 모두 다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를 위해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길을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시고, 약속을 주십니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를 돕기 위해
용서하기 위해
경청하기 위해
여기 있다.
기도 사역 : 경배의 효력
“우리 마음에 무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석 사도 직분께서 경배의 기도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두 가지 효력이 있습니다. 신년 예배의 두 번째 편입니다.
기도는 효력이 있습니다.
경배는 기도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올 한 해 역시 우리 모두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감사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하나님의 성품에 관심을 가집시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하심에는 훨씬 더 많은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것이 완전합니다.
수정하거나 발전시켜야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 하신 말씀은 모두 완전합니다.
영원히, 전적으로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
하나님의 완전하심
하나님의 경이로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단순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그분의 성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끊임없이 이점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는 일은 가치가 있습니다.
이점에 몰입하고 경배를 드리면 우리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유지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나는 작은 존재라는 점을 다시금 알게 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실로 위대하십니다. 큰 소리 치는 사람들, 힘이 있는 자들은 매우 작은 자들입니다.
매우 작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경외심 말고도
깊은 신뢰를 낳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고, 완전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모든 이유를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만 보아도 우리 안에 신뢰가 생기는 것입니다!
한편 겸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경외심 뿐만 아니라,
신뢰와 자신감도 갖추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다면 나는 걱정할게 없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완전하시고 나를 사랑하십니다.
기도는 효력이 있습니다!
경배는 효력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매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경배를 드리는 시간을 가집시다.
하나님의 성품에 몰입합시다.
이것이 우리에게 긍정적 효력이 있습니다.
이는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멋진 준비과정입니다.
기도 사역 : 고마움은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기도는 복을 창조합니다. 이 복은 고마움이 있을 때 모습을 드러냅니다. 만족과 감정적 균형은 우리가 가진 것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신년 예배의 세 번째 편입니다.
또 다른 기도의 요소는 고마움입니다.
우리는 올 해 보다 더 강력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우리에게 행하여 주셨던 것, 주시고 계신 것,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에
더 많이 집중합시다.
나는 사람들이 늘 가지지 못한 것을 먼저 보고, 가질 수 없는 것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 결핍된 것을 먼저 본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향이 있습니다.
온 세상을 돌아보아도
만족과 불만족은 한 개인의 상황과는 완전히 무관합니다.
가진 것이 많으나 계속해서 불만에 찬 사람들이 있고
내가 세계 곳곳에서 본 바, 가진 것이 없어도 매우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만족과 불만은 가진 것, 가지지 못한 것과는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몰입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 때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네 맞습니다. 만물이 하나님께로 나온다면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것도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갑작스레 가진 것에 행복해집니다.
그리곤 알게 됩니다. 내가 이것도, 저것도 다 가지고 있구나.
그리곤 다시 기뻐하게 됩니다.
그것이 만족을 만들어냅니다.
갑자기 행복해지고, 우리의 감정이 확실한 균형을 찾습니다.
삶에서 강함을 얻습니다.
감사하는 자들은 감사하지 못하는 이들보다 더 강해집니다.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보라, 그렇게 비극적이지 않다. 하나님께서 이미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
감사하는 자들은 강한 자들입니다.
감정적으로 균형이 잡혀있고, 삶이 안정적입니다.
따라서 감사함은 우리 가신에게 큰 효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우리는 올 한 해도 시간을 내어서 감사를 드립시다.
기도 사역 : 어떤 요청이 허용된 것인가.
모든 것을, 정말 전적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움을 주고, 변치 않은 방식으로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허나 매우 구체적인 요청일 때만 그렇습니다. 신년 예배의 네 번째 편입니다.
우리는 통상 바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언제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치심 없이, 두려움 없이, 부끄럼 없이,
전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를 염려하게 하는 모든 것을 두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화가 나든, 짜증스럽든,
불만에 차든,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기도에서
하나님께 “하나님 정말 저를 짜증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열고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그분께 말하십시오.
효력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경배와 감사와 함께 나온다면
우리는 올바른 행보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기도 위에 무언가가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말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역시 압니다.
바로 전능하시고, 완전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그리곤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해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완전하셔서,
사랑이 넘치시고, 우리의 구원자 되셔서,
올바른 것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분에 대해 묵상해보십시오.
경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우리를 돕길 원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분의 뜻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단념에 빠지지 않습니다.
단념에 차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원하시는 바를 이루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뤄진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확신과 열정에서 우러나와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나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압니다.”라고 선포합시다.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바라십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행복을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왕국으로 인도하길 원하시며, 그 왕국은 더 이상 고난도, 죽음도, 고통도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는 기도는 경이로운 위로와 힘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하나님께 구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셨습니다.
이는 놀라운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확신하셨습니다.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 예수님께서는 늘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구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것이 무척 멋진 생각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예수님이 하는 말을 경청하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늘 하나님이 베푸시길 원하는 바를 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 역시 이와 같이 기도합시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싶어 하실까
하나님께 여쭙도록 합시다.
이는 곧 구원, 대속, 그리고 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경청하신 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기도 사역 : 어떻게 중재가 도움이 될까?
이웃의 고통이 당신을 스친다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없어지지 않더라도, 중재는 강력하고 몇 가지 방식에서 효력이 있습니다. 신년예배 총 6부 중 5번째 편입니다.
중재는 예나 지금이나 무척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장님이 아닙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가족, 회중, 세상을 주시하면
갖가지 고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기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회중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중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 직접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바로 네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만으로 중재의 필요성이 도출됩니다.
중재는 효력이 있습니다.
“네, 그러나 늘 그런건 아니죠.”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나 역시 그 점을 이해합니다.
따라서 중재가 늘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경험을 통해 배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생각과 경험을 잠시 잠재울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신앙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내 경험과 다르더라도 나는 믿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초기 사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자주 호소했습니다.
이것이 의미없는 이야기라면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사도 바울도 그런 방식으로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재는 효력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는 기도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중재는 먼저 기도하는 사람에게 효력을 지닙니다.
우리가 시간을 내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당연한 고통으로 보이는 것이라도
그 고통의 무게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곤 우리는 은혜가 진실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더 큰 감사함을 느끼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은사가 바로 이것이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게 아니구나.
저 사람이 아니라 내가 왜 이것을 받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곤 신뢰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점을 경배합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내 이웃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행위를 알고 그들을 도우십니다.
그리곤 우리는 이웃에 대한, 사람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재림, 구원, 그리고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따라서 중재는 도움을 줍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 중재는 이웃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도에 응답하심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웃을 도우십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위안이 됩니다.
아직 나에게 관심이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 나에게 공감해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얻습니다.
이것이 신뢰를 강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신뢰합니다.
이것이 확신을 강하게 합니다.
그리곤 무언가 기적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나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손에 이끌림을 받는 듯 한 감정입니다.
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압니다.
누구인지 몰라도, 얼마나 자주인지는 몰라도
어디서 기도하는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압니다.
내 형제자매들의 기도로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입니다.
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여러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서도
“다행히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형제자매들이 계신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중재는 효력을 발휘합니다!
기도 사역 : 우리 안에서 격려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멈추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기도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기도에 있어 동기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신년 예배의 마지막편입니다.
항상 기도하라.
매일, 매 순간, 밤낮을 가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무언가, 음식을 섭취하거나 물을 마시는 등을 해야합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매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고, 우리의 상황, 환경, 어려움, 두려움, 현재 경험 중인 일에 굴복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가 올 때 기도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아! 이 사람에게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상황에 기반을 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기반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차이점입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은 우리의 기도하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길 원하신다는 점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갑니다.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께 말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분께 나아가야겠다, 그분과의 관계를 가져야 겠다, 기도로 대화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필요성을 느낍니다.
하나님께 말해야겠다, 하나님과 대화해야겠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겠다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기도의 기반입니다.
이어서 기도 사역 2탄이 올라 올 것입니다.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