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강림절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우리 주께서 오십니다.” 우리는 강림절을 기념할 때마다 우리는 이것을 되새깁니다. 그때 믿는 이들은 정확히 누구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이것은 네 가지 성경의 관점 중 두 번째입니다.
나의 예수는 약속되었던 구세주이고 그리고 오로지 진정한 스승이시며 주인이십니다. 나는 이것에 대하여 책을 썼습니다.
나는 1세기에 살았던 기독교인입니다. 나는 일종의 교사이며 그리고 내 시대의 경전을 통해 나의 길을 알고 있으며, 그리고 “새롭거나 오래된 보물을 가져 오는 집 주인”과 같이 자신의 일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집은 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팔레스타인이 아니며, 로마 북쪽의 시리아입니다..
궁지에 빠진 믿는 이들.
나의 글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배경으로 합니다. : 즉 구세주를 찾았다는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갑자기 동료들과 분리 된 독실한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은 충실한 유태인입니다. 토라 율법은 단 한 점도 변화 없이 계속 유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나라라고 하는 것도 지극히 높으신 분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않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은 전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애초부터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르며 모욕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불에 기름을 끼얹듯이 말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부르시며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되다.
나의 예수는 메시아이십니다. : 구세주로서 해방시키고, 모으고, 평화로 인도하고, 의로움과 모든 선으로 인도하시는 새로운 시대의 주님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약속된 메시아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 족장과 다윗 왕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를 통해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처럼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의 뜻 : 번역자 주)”의 이름으로, 그리고 참조와 함께, “따라서 쓰였다.” 등은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취”는 나의 책의 핵심 단어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 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입니다.”.
실행의 기독교 신앙.
나의 예수는 또한 궁극적인 스승이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율법교사)라고 부르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뿐이요, 너희는 모드가 형제자매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의 행위와 행동만큼 나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가르침과 함께 내가 그분의 행위와 해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다섯 가지 거대한 강론으로 묶는 이유입니다. 산상설교(“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행하라.”), 사도들에게 지시한 전도 강론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 하는 것”), 비유 강론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교회 강론 (“두 세 사람이 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감람산 강론 (“너희 주인의 기쁨에 참예하라.”).
사실, 나의 예수는 이스라엘의 집들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만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ㄱ리고나서 거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나의 예수는 구원을 약속하셨으며,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나는 이것에 대해 책을 썼습니다. 그들은 나를 복음주의자, 마태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