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차 새로운 소식
전능함이 아닌, 스스로의 특정한 우월함. 전능함이 아닌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보호와 방어. 이는 인간의 존재가 스스로 덫을 세우는 방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함께 읽어볼 법한 서신에서 이 덫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친숙한 찬송가 가사를 성단에서 듣습니다.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인용구로 듣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그 구절 빌립보서 2장 6-11절를 보면 얼마나 친숙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을 구성하는 구절이며, 신약에서 가장 오래된 구절로, 초기 예배 중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로 추정되는 옥중에서 서신을 작성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곳에서 벌인 사역과 아르테미스 이단 종교의 기념품 사업이 충돌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지극히 마음이 쓰이고, 설립에 어마어마한 고통을 들였고, 리디아와 간수장이 있는 빌립보 회중에 서신을 작성합니다.
빌립보의 빛과 그림자
사도 바울은 빌립보 회중을 두고 천국에 찬양을 드렸고, 사랑과 기쁨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권면 역시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중의 친교가 뜨거운 불빛처럼 이어지길 원했고 봉화처럼 퍼지길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외부의 위험과, 더 공격적인,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빌립보를 보호하길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불일치, 이기주의, 인정을 향한 욕망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특히 유오디아와 순두게와 같이 회중을 이끄는 인물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고, 가정 교회의 지도자로 추정되는 높은 자아에 심취한 여인도 언급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호소는 교회 전체를 향했습니다.
거룩함 이상 혹은 이하?
친숙한 찬양을 통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본으로 주목을 받게 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었다는 실제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분의 거룩함을 굳게 붙잡거나, 그분 자체에서 나오는 장점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한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의 거룩함을 내버리시고, 직접 하나님 아버지의 선한 이유를 향한 종이 되셨습니다. 헬라어 원문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요약해도 그렇게 해석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존재인 우리와 어떻게 연관이 있습니까? 인류는 이러한 “거룩한 덫”을 맞닥뜨린 적이 없을까요? 어떻게 그렇겠습니까! 아담은 이미 이러한 덫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인류의 원형으로 충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더 큰 거룩함의 수단이라 생각한 것을 향해 나아갔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가까이하심 조차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덫에 빠진 인류
오늘 날의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가 인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불의가 우리에게 닥쳐올 때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의 (추정된) 우월함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이러한 거룩한 덫에 처합니다. 이는 회중에서 시작됩니다. (“비-기독교 음악,” “결혼식 예복 삭제,” “환영받지 못함”) 이는 곧 국제 교회 전체로 번집니다. (여성의 직분안수?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영광에 있어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인침을 받은 믿는 이들이 새로운 창조물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수석 사도께서는 오랫동안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계시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고, 그 누구라도 더 훌륭하거나, 가깝거나, 더 거룩할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섬김의 용기
사도 바울이 제시한 단 하나의 진실된 해결책은, 빌립보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 날 모든 사람에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찬양. 우리는 스스로의 강점과 지위를 내려놓고, 스스로 선한 동기의 섬김에 헌신해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과 같은 수준으로 이를 실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할 수는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보내는 서신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측정할 수 있는 표준을 세웁니다. 천 년이 지난 후에도, 선지자 아모스의 호소는 유효합니다. “선을 찾으라.”
영어원문 ㅣ https://nac.today/en/158033/877788